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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동구 유명한 철학관]간판이름도 없고 손님들끼리 알아서 기다리는 곳

by 지혜의여신 2021. 11. 17.

 

 

 

 

 

결혼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인생 내 것인데 결혼했다고 남편의 영향을 받을까? 남편은 남편이고 나는 나로 살면 되지 않나?라고 말이다. 가끔 지인들이 결혼해서 남편이 어쩌네, 남편 때문에 못 살겠네. 이런 이야기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결혼해 보지 않으니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어느덧 결혼한 지 13년 차. 살아보니 부부는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너는 너 나는 나가 되지 않는다.

 

나도 그렇지만 남편도 굴곡이 있었다. 내 일이 항상 잘되지만 않은 것처럼 남편 역시 그랬다. 누구 하나 일이 잘 되면 누구 하나는 안되기도 하고 둘 다 잘되기도 하고 둘 다 안되기도 하고.

늘 똑같지만은 않았다.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살면서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항상 돈이였다. 그것도 신랑의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거나 아예 없을 때가 길어지면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하긴. 오죽했으면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밖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을까. 돈은 무시 못하는건 맞다.

 

그렇지만 그게 부부싸움꺼리가 되는지 여부는 아내인 나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신랑의 자존감은 땅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잘될 것 같은 막연한 기대에 시작했던 사업도 접고 새로 시작한 일도 뜻처럼 잘되지 않고 있다. 생활비는 6개월째 감감무소식이다. 

 

이렇게 신랑 수입이 없을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둘 중 하나는 월급쟁이로 있을걸. 둘 다 프리랜서다 보니 고정 수입이 없는 게 참 아쉽다.

 

다행히 내 수입이 나쁘지 않아 버티고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하고 돈이 부족하면 아껴쓰면 된다.

 

 

 

몇달째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지 못하는 그 심정에 나보다 더 답답한 건 남편일 것이다.  아내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오죽할까 싶어 몇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마냥 기다려주기로 했다.

 

맘은 그렇게 먹었지만 내 맘도 편치만은 않다. 누구에게 하소연하기도 쪽팔리고. 나중에 그 사람이 내 남편 보면 어찌 생각할까 싶어.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하려다가도 쏙 들어가 버린다. 

 

 

그래서 그분을 또 찾게 된다. 여기저기 용하다고 소문난 그분을.

지인들에게 용하다는 분을 수소문 해본다. 최근에 가본 적 있냐. 어디서 봤냐. 잘 맞추냐 어쩌냐를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집하고 가까운 곳을 소개받았다.

 

아침10시나 돼서야 문을 여는데  오전 7시부터 줄을 서야 한다고 한다.

 

벌써 이 한마디에 용한집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다면 오후에 한번 가보자 라는 생각으로 이틀 전 월요일 다녀왔다.

 

점심을 먹고 차로 20여분 거린데 생각도 정리할겸 걸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산책로가 좀 나있는 코스가 많아서 걷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1시간 30여분 정도 걸린 듯하다.

 

이름도 없이 그냥 철학관이라는 간판만 있고 허름하다. 찬바람 씽씽 들어오는 대기석에는 6명이나 앉아있다.

 

대박. 진짜 용한 곳이 맞구나.

 

내 기대를 더 높여주었다. 

 

한 명씩 들어가는데 어떤 사람은 20분, 어떤 사람은 15분, 생각보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1시간 20분 정도가 돼서 내 차례가 되었다. 

 

쉼 없이 상담하신 그분이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나가신다. 내 뒤로 대기는 2명. 거의 끝날 시간이었다.

 

 

 

 

간판은 그냥 철학관. 1인당 3만원. 이분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인생을 말해줬을까. 돈은 많이 버셨을까? 궁금했다.

 

 

 

 

그러면서 그분이 참고하는 책을 보고 너무 놀랐다. 지금까지 많은 철학관을 갔지만 책이 이 정도로 난리 난 책은 본 적이 없다.

 

진짜 용한집이 맞는구나. 사람들이 어마 무시하게 오나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담 시간도 15분 정도 된 듯하다. 

 

궁금했던 남편에 대해서 물었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물어봐서 답해드렸다. 

 

결론은 큰 기대를 갖고 살면 안 되겠구나.

 

 

 


 

 

 

다시 걸어서 집으로 갔다. 올때와 똑같은 길이 생각보다 짧게 느껴진 건 가는 내내 나왔던 어이없는 웃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항상 그랬다. 이런 점에 우리 운명을 물어본다는 게 어이없으면서도 때론 위안이 된다.

 

그분이 이야기해준 것이 맞다 틀리다를 나중에 따질 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 순간 위안이 됐다.

 

가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야. 자기 하는 일 꾸준히 하면 좋다고 하네.
지금은 뭐든 다 힘들잖아.
힘든 거 좀 버티면 분명 좋을 때 온다고 하네.

 

 

 

 

며칠 전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지금 이 일이 재밌다고. 당장은 돈이 안되지만 본인이 재미있다 하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운건. 이 또한 지난간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아픈 사람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남편도 나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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